11월말 대천 앞바다에서의 쭈꾸미 낚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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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25일 토요일 대천 앞바다에서 우리 회사 직원 27명과 같이 쭈꾸미 낚시를 다녀 옴.

갯지렁이나 미꾸라지를 사용해야 하는 우럭 낚시와는 달리 쭈꾸미 낚시는 쭈꾸미 볼이란 단순한

하얀색 공에 바늘이 달린 것을 바다 밑에 넣고 살살 끌다가 가끔 씩 올려봐 쭈꾸미가 붙었는지를 확인하면서 잡는

낚시이다.

항구에서 멀리 나가지 않고 육지 가까이에서 잡는데다 간단하고 미끼를 사용하지 않아 여직원이 많은 우리 회사의 단체 낚시로 아주 적합.



더구나 예년과 달리 수온이 별로 낮아지지 않아 쭈꾸미가 아직도 충남 앞바다에서 잘 잡힌다는 인터넷 조황 소식을

듣고 강행.

전날 밤 쭈꾸미 낚시 요령을 칠판에 그려가며 설명하면서 날씨만 좋으면 1인당 30마리는 문제 없다는 설명을 해주어도 모두 믿기지 않는 눈치.

문제는 낚시배 섭외. 27명이 타고 낚시 해야 하므로 크고 넓어야 하는데 낚시배는 대부분 15인승 이하. 다행히

관광 비수기 때문인지 45인승 유람선을 구했다. 선실도 넓고 쾌적한데다 가스 히터로 선실이 따듯하여 최적의 선택.

7시 50분 출항. 8시 10분 정도 부터 쭈꾸미 낚시 시작. 시작한지 얼마되지 않아 여기 저기서 탄성이 오르고

여직원은 물론 대부분의 남자직원도 바다 선상 낚시는 처음 . 거기다 쭈꾸미 낚시는 나빼곤 모두 처음.

그래도 곧 요령을 터득하여 잘도 잡아 올린다. 더구나 11월 말 날씨라곤 믿기지 않을 정도로 포근하고

바다에 바람도 거의 없어 수면이 거울 같이 잔잔하였다.

준수한 씨알의 쭈꾸미를 잡아 올리고 한 컷

멀리서 대천 해수욕장을 바라보면서 따뜻한 햇살을 쪼이면서 낚시대를 드리우고 있으니 존 덴버의 " Sunshine on my shoulder" 란 노래가 절로 나오고.

전날 밤 강제로 붙이기게 한 귀미테와 상승작용으로 배멀미 하는 사람은 하나도 없고..

점심 도시락 먹으라 해도 한마리라도 더 잡겠다고 밥 먹는 시간까지 아껴가며 낚시를 한다.따뚯한 선실에서 모여 앉아 먹는

점심도 맛있고 웃음이 그치지 않는다.

이렇게 재미있게 낚아 올린 쭈꾸미는 대략 1 인당 40 마리 정도. 난 50 마리 이상 잡았다.

대신 씨알이 좀 작은 것이 많았는데 집사람 말로는 요새 시장에서 쭈꾸미 4 마리에 만원 한다고 하니 어제 한사람당

10만원 어치의 쭈꾸미를 잡은 셈. 낚시 배 대여료 및 낚시 채비 구입비 등이 130만원 정도 들었나고 하니

어제 잡은 쭈꾸미 값으로 270 만원 이니 하루 잘 즐기고 낚시 체험하고 서로 단합의 기회도 갖고 여러면에서 유익했던

했다. 더욱이 막힐 줄 알았던 서해 고속도로가 비교적 잘 소통되고 귀경길도 편하게..







낚시 시작하고 3 시간 정도 지난 후의 내 아이스 박스 . 이날 선장님이 잡으신 20마리 까지 추가하여 집에 가져온 쭈꾸미는 모두 75 마리.

3 마리는 저녁에 산낚지 처럼 참기름과 맛소금 양념으로 ..

나머지는 한번에 먹기 편하에 5 마리 씩 나누어져 냉동실로 .

아마 겨우내 쭈꾸미 볶음. 쭈꾸미 불고기 , 쭈꾸미 덥밥 및 쭈꾸미 철판 구이용으로 사용 될 듯.


대천항에 도착해서 잡은 쭈꾸미를 스치로폴 박스에 얼음과 함께 넣어 집에 가져 갈려고 바쁜 모습

제주 워크샵 후 바다 낚시와 한라산 등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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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라산 성판악 코스 진달래 산장 입구 . 비와 안개 때문에 뒷편에 널린 산죽 군락이 잘 안보인다.



같은 장소에서 다시 한 컷

비와 안개를 뚫고 올라간 한라산 정상. 백록담은 커녕 10M 앞도 잘 안보이고 너무 춥고 바람불어 증명 사진만

찍고 바로 하산. 1800M 이후는 사진에서 보는 것과 같이 바닥이 얼어 있어 조심 조심.



첫번째 만새기를 잡고 한 컷. 실은 50Cm 정도로 가장 작은 것 평균 70Cm . 큰 것은 1M 가 넘었다.



내 평생 이렇게 크고 살찐 삼치 ( 참치나 가다랑어 아님 )는 첨 봤다.



배 낚시 중 한 컷 - 지귀도 근처

바다 낚시 사상 최대의 대박 - 만새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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넘치는 아이스 박스. 삼치와 점 가다랑어 들

삼치가 그렇게 큰 것은 처음. 크기도 크거니와 살도 많이 올랐고 힘도 대단.





제주도 워크샵 일정 중 하루를 서귀포 앞바다에서 트롤링 낚시를 다녀 왔다.

원래 목표는 방어.

11월 3 째 주말 모슬포에선 방어 축제가 열릴만큼 11월은 방어의 철이다.

크기도 크기니와 맛도 일품 지난 12일 일요일 날 SBS의 맛대맛에선 제주도 방어를 소개하면서 버릴 것 하나 없는

고기로 선전하여 더욱 더 방어 낚시에 대한 관심이 깊어 졌다.

워크샵 가기 전 낚시 관련 서적을 통해 방어는 해 뜨고 나서 1 -2 시간 안에 하루 전체 먹이의 50%를 먹기 때문에

해 뜰 무렵 부터 낚시를 하는 것이 조과를 보장한다는 것을 알고 워크샵에 참여한 우리 센터 직원 14명을 독려하여 6시 20 분 숙소인 중문 한국 콘도를 나와 서귀포 항에 7 시에 도착 2 배로 나눠타고 '지귀도' 해역으로 떠났다.

떠난지 30분 지귀도 해역을 두배가 서로 반대 방향으로 돌면서 트롤링 시작. 트롤링이란 굵직한 바늘이 숨겨진 가짜 오징어가 3m 정도 간격으로 5 개 씩 달린 줄을 배 뒤 양편에 하나씩 달고 방어가 회유하는 속도인 5- 6 노트 정도로 끌면서 가면

대형급의 고기가 무는 것.

트롤링 대상은 방어, 부사리, 만새기, 다랑어, 삼치 등으로 주로 떼로 몰려 다니는 회유성 어종이다. 쉬지 않고 바다 표층을 헤엄쳐 다니기 때문에 힘도 좋고 대형인 것이 특징. 잡혔다 하면 많이 잡히지만 이들 떼를 못 만나면 전혀 잡지 못하고 돌아 오게 되는 좀 도박성이 강한 낚시 방법이기도 하다.

처음에 안잡히더니 드디어 50Cm 급 작은 것 하나가 잡혔다. 잡힌 것을 보니 방어와 비슷하게 생겼지만 머리 모양이 다른 것으로 바다 낚시 가이드 북에서만 보았던 만새기.

얼마 후 양쪽에서 2- 3 마리 씩 소나기로 걸렸다. 남자 직원 모두가 달려 들어 끌어 당기지만 힘이 엄청나 당겨도 당겨도

감아 들이는 속도는 느리기만 하고 곧 바로 팔에 통증이. 이것은 손맛이 아닌 몸맛도 아닌 중노동.

감아 들이고 나니 보통이 60- 70 센치급의 준수한 만새기 . 다시 한번 배를 지귀도를 도니 또 한번 만새기 떼를 만난듯

소나기로 결려 들고 큰 것은 1미터 가 넘는 것도.

쿨러에 들어가지도 못할 사이즈와 마리수.

이어서 엄청난 크기의 삼치 그리고 점다랑어.

내가 탄 배가 약30 마리 , 다른 배가 26 마리 하여 총 56 마리를 2시간 동안 잡았다.

날씨가 좋아 지귀도에 내려 직원들은 아름다운 경치를 배경으로 사진도찍는 동안 나는가져간 낚시대를 드리우며 조그만 어랭이 몇마리를 잡고 다시 노아주는 이른바 Catch and Realease를 했다. 속으로는 돌돔이나 하다 못해 독가시치라도 잡아 보았으면 했지만이들 고기는 잘 잡히는 고기는 아니라..

지귀도에 내린지 15 분 정도 후 잡은 만새기로 선장님이도마위에 한가득 회를 만들어 주었다.

만새기는 주로 제주도 남녁에서 많이 잡히고 방어 보다 맛이 좋다고 하는데 특히 일본인이 더욱

좋아 하는 생선이라고.. 일본명은 '시이라'

미터 급의 만새기 하나를 잡아 회를 만드니 14 명이 모두 먹어도 될 만큼 많은 양.

제주도 한라산 소주를 같이 곁들이며 먹는 만새기 자연회는 일품.

어느 정도 회도 먹고하여 다시 낚시대를 ..

그런데 옆에 보던 여직원에게 손맛이나 보라며 지렁이 끼워거내주니 곧 바로 낚시대에 뭔가 큰 것이 걸린 것 같다고.

바닥이 걸린 것일 것이라고 판단하여 릴을 감아 보라고 했더니 물속에서 허연 것이 올라 오는데..

꽤 큰 덩치의 문어가 ... 옆에 앉아 회를 먹던 직원도 함께 환호성, 새로운 안주거리 생겻다고 ( 그 문어는

그날 밤 뜨거운 물에 살짝 데쳐 직원들의 밤참 안주로 ...)

너무 많이 잡아 배 편 한 곁에 놓여진 만새기 6 마리

1m 가 넘는 만새기 500mL 짜리 생수통이 너무 작아 보인다.

나의 생녹음 과 AV 취미 변천사

Audio recording 2006. 11. 8. 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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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위스 나그라사의 휴대용 릴 테이프 녹음기

생녹음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1992년 Teac에서 나온 휴대요 DAT를 구입하고 난 후 이다.

그전부터 일본의 오디오 기기 자작 전문지인 ‘무선과 실험’지에 나온 생녹음 관련 기사를 탐독하였다.

그 전에는 휴대용 카세트 녹음기는 있었지만 음질이 좋지 않았고 음질이 좋은 릴 테이프 데크는 스위스의 Nagra 나 Stellavox에서 나왔지만 엄청난 고가여서 도저히 엄두가 나지 못했다.

그러다 1992년 들어서서 휴대용 DAT가 소니 등에서 나오기 시작하면서 본격적인 생녹음을 할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되었다.

녹음기와 함께 가장 중요한 것이 음질을 좌우하는 마이크로폰. 현장의 분위기를 그대로 잡을 수 있는 콘덴서형 마이크가 필요하였는데 음질에 정평 있는 독일의 Neuman이나 오스트리아의 AKG 등의 스튜디오형 콘덴서 마이크는 개당 100만원 이상하는 고가여서 선뜻 구매하기가 어려웠다.

가장 먼저 구입한 휴대용 DAT


이러한 때 접하게 된 기사가 DC 앰프 자작 시리즈를 연재한 가네다씨가 고안한 로봇형 원 포인트 스테레오 방식의 DC 마이크.

몇 가지 부품 구하기가 힘들었지만 정력이 넘치는 30대 초반의 시절이라 휴일을 반납하면서 완성하였다.

가네다씨가 추천한 마이크의 콘덴서 모듈로는 독일 Schopes 사의 MK-4 또는 AKG사의 CK-1 중에서 당시 국내에서 구입 가능한 AKG사의 CK-1을 사용하였다.

Schopes사의 MK-4는 현재 국내에서 구입이 가능하기 때문에 이를 기회가 되면 이를 이용하여 다시 한 세트를 더 만들고 싶은 생각이 든다.

콘덴서의 다이어프레임이 다소 크기 때문에 저역대의 음이 더 풍부해 질것으로 생각이 된다.


아쉽게도 Ck-1 모듈은 이제 생산이 중지되어 전설의 콘덴서 모듈이 되어 버렸다.

DAT를 사용한 생녹음 장비 전체


한편 음질형성에 크게 작용하는 아날로그 신호의 디지털화를 하는 A/D 변환도 휴대용 DAT에 내장 된 A/D 컨버터의 성능이 미덥지 못하여 A/D 컨버터를 자작하여 사용하였다.

1996년 당시 A/D 컨버터는 몇 가지 나오지도 않았을 뿐더러 가격도 매우 비싸 이것도 데이터 시트의 자료를 참조하여 설계부터 직접 하여 자작하였다.

16비트 44.1 Khz 와 48Khz의 A/D 컨버터인데 음질을 최우선으로 Simple is Best 개념으로 설계하였다. 휴대에 편하게 배터리로 구동할 수 있게 하였다.


2 년 정도 이 로봇형 자작 마이크와 휴대용 DAT를 이용하여 대학로나 홍대 앞의 재즈 공연이나 락, 포크 공연을 주로 녹음하였다. 현재 녹음 된 DAT 테이프가 100개 정도 되는 것 같다.

기억에 남는 것으로는 92년 전인권씨의 대학로 충돌 2 극장 공연, 빛과 소금, 햋빛촌 합동 공연,

재즈 연주가인 이정식씨 공연 그리고 산울림 공연 등이 있다.

생녹음후 만들어진 전인권과 이정식씨의 CD

그러다 1998년부터 DVD와 프로젝터를 통한 홈 시어터 쪽으로 관심이 옮겨 가게 되었다.

당시 소니의 VPL-400Q 라는 3판식 LCD 프로젝터를 구입하여 80인치의 스크린으로 DVD를 통해 돌비 5.1 과 DTS로 즐기는 영화와 공연 실황은 순수 오디오와는 다른 차원의 즐거움을 주었다.


그 때부터 ‘HI VI' 또는 계간 ’ 홈 시어터‘ 라는 일본 잡지나 관련 미국 홈 시어터 잡지를 열심히 구독하게 되었다. 1 년 반 정도 사용하니 LCD 프로젝터의 한계를 느끼기 시작하여 색상 재현성 특히 시네마틱한 질감 표현이 우수한 3관식 프로젝터에 관심이 커졌다. 3관식 프로젝터는 덩치가 크고 세팅 및 조정이 힘들어 1999년 말 만 해도 사용자가 많지 않았다.


3관식 프로젝터 중에서도 업무용이 아닌 홈 시어터용은 기종이 그리 많지 않았는데 일본 잡지의 홈 시어터 애호가 중들이 많이 사용하는 소니의 7인치 기종인 D50Q를 미국에서 구입하였다.

3관식 프로젝터의 화질은 역시 영화를 볼 때 가장 적합하였다. 영화관에서 보는 것과 같은 필름 질감이 집에서 그대로 재현 되는 데 감격했다.


2000년 부터는 수도권 지역에서 디지털 지상파 HD 실험 방송이 실시되기 시작하였는데 처음으로 수신해서 3관식 프로젝터를 통해 본 HD의 화질은 DVD 보다 몇 단계 고차원적인 화질을 보여주어 완전히 감격.

순수 오디오에서 홈 시어터 즉 AV 쪽으로 관심이 완전히 돌아서는 계기가 되었다.

특히 2000년 말 부터는 일본이 위성을 이용한 디지털 HD 방송을 시작하였는데 수도권 지역에서 180Cm 정도의 대형 파라볼라 안테나를 설치하면 수신이 가능하였다. ( 2004년 2월부터는 위성 트랜스폰더의 고장으로 충청권 이후에서는 수신 불가)


NHK와 영화 전문 유료 채널인 WOWOW에서 방영하는 HD 영화와 컨서트 실황 및 다큐멘터리 HD 프로그램은 실로 다양하여 완전히 차원이 AV 문화를 향유할 수 있게 되었다.


약 3000원 이하의 S-VHS 테이프를 이용하면 D-VHS 데크를 이용하여 HD 화질 그대로 디지털 녹화가 가능하기 때문에 좋은 프로그램이 있으면 계속 녹화 해 놓아 현재 약 1500개의 테이프를 보유하게 되었다.

이후 수도권을 중심으로 HD 디지털 본방송이 개시 되었고 스카이라이프 HD 방송도 시작되어 이제는 다양하고 풍부한 AV 생활을 즐길 수 있게 되었다.

2003년 여름에는 프로젝터의 최고봉이라고 할 수 있는 9 인치급 3관식 프로젝터인 Marquee 9500LC를 중고로 구입하였다. 구입 당시에 3 관식 프로젝터의 가장 핵심인 관은 미국 본사에 보내 완전히 rebuilt 하여 장착하여 사용하였다.


이 마퀴9500LC는 최고 해상도가 2500*2000 정도 되기 때문에 1920*1080의 HD 해상도를 능가하는 스펙을 갖고 있어 HD 시대에 있어서는 더욱 진가를 발휘하는 기기이다.


필자의 경우 80년대 이후 진공관 앰프 등의 자작 경험을 살려 이 마퀴 9500LC도 수차례에 걸쳐 개조를 했다.

개조 부분은 비디오 신호가 직접 지나가는 입력 보드에 대한 고품질의 부품으로 업 그레이드 하는 것과 전원부를 중심으로 이루어 졌는데 예상외로 효과가 뚜렷이 나타났다. 현재는 생각할 수 있는 개조의 90% 정도 이루어진 상태이다.


룸을 완전히 어둡게 해야 하는 단점이 있기 하지만 화질 면에서는 아직 다른 형식의 프로젝터가 따라올 수 없는 궁극의 화질을 보여주어 매우 만족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