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가요 마스터 릴 테이프를 찾아서

audio 와 Home theater 2005. 9. 7. 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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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스터 테이프 이야기와 관련된 한가지 에피소드는 아른바 청계천 8가 황학동 고물 시장에서 찾아낸 60-70 년대의 가요가 담긴 마스터 테이프에 관한 이야기이다 .


부모님 댁에서 버스로 15 분 정도 되는 거리에 있기 때문에 일요일 오후 가끔 심심풀이 삼아 황학동 고물 시장에 가서 각종 잡동사니들을 구경 하고 또 가끔은 옛날의 가요 LP들을 골라서 싼값에 사는 재미를 느끼곤 하였는데 그중 각종 구형 릴덱등 녹음기 들을 전문으로 취급하는 한 가게를 지나는데 가게 앞에 수북히 싸인 7인치 짜리 릴 테이프가 눈에 들어 왔다.

대개들 어학교재를 녹음 하거나 방송국에서 흘러 나온 폐기 처분된 테이프들이라 별로 관심없이 지나 치곤 했는데 이례적으로 깨끗한 박스가 눈길을 끌길레 살펴보니 주로 국내 영화의 주제곡이나 관련 음악들을 녹음한테이프들이었다.

박스안에는 마장동 스튜디오나 장충동 녹음 스튜디오, 간혹은 강남의 녹음 스튜디오에서 녹음한 오리지널 테이프들로 노래제목 ,연주시간,연주 악단또는 가수 , NG 난 부분의 표시 등이 명기 되어 있었다.

대부분은 별 가치가 없는 영화들과 관련된 녹음이었지만 계속 뒤져 보니 지금은 유명을 달리한 70년대초의 포크계열 가수 였던 김인순씨의 노래 ( 여고 졸업반등..) 과 김세환씨,정미조씨 박미경씨등의 노래가 든 테이프들도 발견 되었다. 테이프 상태를 보니 먼지가 잔뜩 묻기는 하였지만 꽤 보존이 좋은 상태여서 일단 가수들의 노래가 든 테이프는 모두 골라 개당 2000원씩 주고 삳다.

주인 한테 물어보니 어느 집에서 1200개쯤 나왔는데 어학교재 상한테 800개쯤은 팔고 난 나머지라고 하였다. 집에 와 걸레로 먼지를 딱고 리복스 릴데크에 걸어 먼저 정미조씨의 곡이든 테이프부터 틀어 보았다. 첫소절이 나오는 순간 . 거의 기절할 정도로 생생한 목소리. 70년대초의 정미조씨가 바로 스피커 가운데서서 약간은 허스키한 목소리로 부르는 노래 ‘외롭다고 느끼실땐 두눈을 꼭 감고 ...휘파람을 부세요..’


전율을 느낄만한 생생한 음에 감동 되어 나머지 테이프들도 틀어보니 모두 다 직접 스튜디오에서 녹음한 제1 세대 원본 테이프 또는 마스터 테이프( 곡 사이 사이 마다 리더 테이프로 깔끔하게 정리 되어 있어 쉽게 구분 할수 있다.) 인 것을 알았다. LP에서는 들을 수 없는 거대한 다이나믹 레인지의 상쾌한 음이 그러면서도 미세한 뉴앙스가 잘전달 되는 김흥을 만끽 할수 있었다

몇몇 테이프는 60년대에 에 녹음되었는지 아직은 한참 젊은 시절의 최희준씨 목소리 그리고 양미란 씨 등등 거의 기억에 가물가물한 가수들의 스튜디오 현장 녹음테이프들도 들어 있어 흥미로웠다. 여담이지만 최희준씨의 60년대 목소리가 매우 김미롭고 음폭이 넓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특히 중저음대의 목소리가 매우 윤기 있고 부드럽다고 느꼈다.

이들 테이프를 계속 살펴보니 작곡자가 계속 정민섭씨로 표기 된 것을 알수 있었고 그것으로 추측해 보건데 작곡가 정민섭씨가 소장 했던 테이프가 그분이 돌아가시고 나서 방출되었는 것으로 짐작 되었다.


이후에 이런 원본 가요 테이프들을 찾아 보려 몇몇 방송국과 녹음스튜디오에 문의 했으나 대부분 보관하고 있지 않다는 대답을 들었다.


아마 많은 양의 원본 가요 마스터 테이프들이 재사용을 위해 지워지고, 거리로 나와 어학테이프 용으로 팔려 나가 없어졌을 것으로 생각된다.

우리나라의 흑백영화 필림 들이 밀집 모자의 띠로 사용 되기 위해 잘려져 없어져 버린 것과 같은 과정으로 우리 곁에서 영원히 사라져 버렸다는 생각이 들어 씁슬 한 감을 버릴수 없었다.

미국이나 유럽에서는 LP로 나온 곡들의 마스터 테이프는 물론 방송국에서 녹음된 테이프들도 잘 보관 되어 있어 비틀즈가 해체된지 20년이 넘었는데도 아직 이런 미발굴 미공개 자료를 모아 "Beatles Anthology' 란 CD 가 나오고 있는 상황과는 너무나 대조적이 아닐수 없다.


오디오 기기 자작기 1 부

audio 와 Home theater 2005. 7. 15. 1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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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SFET 60W 파워 앰프 등 자작 초기의 트랜지스터식 앰프 자작 경험

지난 호 월간 오디오의 오디오 사용자 기기 현황 조사에 의하면 사용하고 있는 앰프 중
3 위가 자작 앰프라는 결과가 나왔다. 사실 지난 몇 년간 오디오 자작 인구가 크게 늘어
났다는 느낌을 받고있다. 오디오 자작 기사를 다루는 잡지도 늘었고 오디오 자작인을 대상으로 한 부품과 키트를 판매하는 상점도 몇 군데 생겨 성업중이다.

필자는 월간 오디오에 92년 10월 ‘MOSFET 60W 파워앰프 자작기’를 시작으로 하여 미국
IBM 왓슨 연구소에 2 년간 파견되기 전인 96년 초까지 한 회도 빠짐없이 자작 관련 기사를 게재한 바 있다. 필자는 오디오 기기 자작을 통해서 정말 많은 것을 경험하고 즐겼다고 할 수 있다. 평면적이고 소비 지향적인 오디오 라이프가 보다 생산적이고 활기에 찬 취미 활동으로 변모하였다.

오디오 기기 자작 취미에 대한 좋은 점은 여러 가지를 들 수 있겠지만 가장 큰 점은 고급 오디오 기기에 대한 욕심이 거의 없어진다는 점이다. 오디오 기기 자작을 시작하고 파워 앰프와 프리앰프를 한 두 대 만들어 보게 되면 앰프에 대한 기본적인 원리와 사용되는 부품을 에 대한 이해와 품질 등을 구별 할 수 있게 된다. 그리고나서 하이엔드 앰프라고 하는 제품의 내부 사진을 보면 어느 정도의 급의 부품이 사용되고 있고 어떤 회로 방식을 채용하고 있는 가 하는 것에 대한 감을 대충 잡을 수 있게 된다. 실제로 오디오 자작에 어느 정도 익숙한 사람이 수백 만원 또는 천만 원이 넘는 앰프의 실제 내부를 자세히 보게 되면 대략 실제 부품과는 1/5 - 1/10 정도 밖에 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쉽게 알게 된다.

말이 다소 다른 곳으로 흘러가는 느낌이 있지만 현재의 하이엔드 오디오 제품은 일종의 공예 품과 같아 부품 가격과 실제 완제품 가격과는 엄청난 차이를 갖게 된다. 이제 많은 젊은 세대의 관심이 순수 오디오가 아닌 AV나 컴퓨터 쪽이어서 순수 오디오를 취미로 하는
사람은 30대 말 이후의 중 장년층이라 할 수 있다. 이런 현상은 비단 우리 나라 뿐만 아니라 미국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필자가 미국에서 대학원 생활을 하던 80년대 중반만 하더라도 “Audio', 'Stereo Review' 와 같은 잡지들은
일반 서점이나 가판 스탠드에서 쉽게 볼 수 있는 대중 잡지 이었으나 이제는 잡지 전문 매장에서나 볼 수 있을 정도로 인기가 없어진데다 부피도 매우 얇아져서 볼품 없을 정도로
변하였다. 이같이 오디오 시장이 고가의 하이엔드 제품 쪽으로 흐르다 보니 수요가 많지 않아 실제 부품가격 몇 배 이상의 오버 헤드가 붙게 되었다. 직원의 봉급, 회사 운영비, 광고 선전비가 최종 제품가격에 녹아 들어간데다 국내의 수입상의 이윤까지 더하여져 심하게는 최종 국내 소비자 가격이 부품가격의 10 배 이상으로 높아지게 된다. 그러나 자작을 하게 되면 이런 거품에서 완전 해방되어 최고의 부품과 회로를 사용하여 질 높은 앰프 등을 만들 수 있다.

또한 자작을 하면 전자 기술, 좁게는 회로에 대한 이해를 쉽게 할 수 있다.
사실 파워 앰프와 같은 것은 전자 회로로 보면 가장 간단한 회로에 속한다. 기본적인 이론은 1920 연대에 완성이 되었고 지금과 같은 푸쉬풀 회로 등도 1940 연대에 이미 완성된 회로 기술이다. 물론 지금도 새로운 제품의 선전을 보면 무슨 ㅇㅇㅇ 회로 방식 채택 등으로 요란한 선전을 하지만 대부분 아주 하찮은 것에 지나지 않고 그 회로를 채택하였다고 해서 반드시 음질이 좋아진다는 보장도 없다.

본론으로 다시 들어와서 필자의 자작 경험을 조금 소개하고 싶다. 필자는 1980- 1982 년까지 서울 공대 전기과 대학원들 다녔다. 전기 기계 전공이었는데 이 때 논문을 위한 실험용 기기 보다 정확히는 대형 모터의 속도제어와 효율 제어를 위한 마이크로프로세서 제어 회로를 꾸미게 된 것이 처음으로 전자 기기 회로를 만들어 본 경험이다. 대학교 졸업시 까지는 정말 전자 회로를 꾸민다는 것에 대해서는 완전 깡통이어 회로도에 접지 표시로 쓰는 기호에 수도꼭지에 연결하는 표시를 보고 정말 선을 길게 끌어 수도꼭지에다 연결하여야 하는 줄로 알 정도였다.

전혀 경험이 없이 대학원에 와서 선배와 동료의 도움으로 실험 장치를 꾸며 논문 실험을 끝내기는 했지만 오디오 기기 자작은 꿈도 꾸지 못할 정도였다.

본격적인 자작은 직장을 갖고 나서 2년 정도 지난 84년경 지금도 있는 청계천 세운상가의 세운 기술 서적에서 가남사라고 하는 조그만 출판사에서 번역하여 낸 ‘앰프제작의 키포인트’ 라는 책을 사게 된 것이 계기가 되었다. 원래 이 책은 자작 애호가 사이에는 이름이 잘 알려진 일본의 구보다씨가 쓴 “ 앰프 제작의 노우하우‘ 란 책인데 MOSFET 트랜지스터를 사용한 파워 앰프에 대한 제작 기사를 초보자도 할 수 있게끔 기초에서부터 쉽게 설명한 책이다. 어려운 수식은 가급적 피해 가면서 썼는데 책의 뒷 부분에 그간에 설명한 것을 모두 종합하여 MOSFET 60W 파워앰프 자작 기사가 상세히 실려 있었다.

회로도룰 보니 매우 간단하여 과연 이렇게 간단한 회로가 좋은 소리를 내 줄까 하고 매우 미심쩍어 했지만 책 구절 구절마다 MOSFET 트랜지스터 특유의 맑은 해상력과 중후함 과 박력이 어우러진 음질을 내면서도 쉽게 만들 수 있다는 말에 끌려 자작을 해보기로 결심하게 되었다.

회로도와 부품 표를 들고 청계천 세운상가를 찾아 물어 물어 부품을 하나씩 구하는데 처음이라 애를 무척 많이 먹었다. 세운상가의 부품 상들은 왜 그리 꼬불꼬불한 길에 숨어 있는지 또 몇 개 사냐고 물을 때 “ 2 개만 요 , 아니면 4 개만 요‘ 라고 하면 기가 차다는 듯이 보다가 딴 데 가서 알아보라고 문전 박대를 당하기도 하는 등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그 책에 나온 대로 에폭시글래스 재질의 PCB 원판을 사다 줄 톱으로 잘라 유성 매직펜으로 책에 나온 회로의 패턴도 대로 그려서 염화제삼철 부식용액에 담가 보았다. 용액에 담가 놓아야 되는 시간을 잘못 알아 선이 가는 부분까지 부식되어 버리는 결과를 가져와 다시
점퍼 선을 사용하여 이어야 하는 일도 생겼다.

새시를 무엇으로 할 까 하다가 왠지 마켄토쉬 진공관 파워앰프 MC275의 자태가 멋있어 이를 본 따 근처 목공소에 부탁하여 합판에 무늬 목을 입히고 검은색 락카 칠을 하여 새시를 만들어 사용하였다.
지금 생각하면 너무 어처구니없는 일인데 새시를 나무로 만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신기하게도 험이 전혀 나지 않았다. ( 독자께서는 이런 실수하지 않기 바란다.)

나무로 된 샤시 위에 방열판을 설치하고 만든 이 앰프는 84년 봄 어느 일요일 아침에 완성이 되어 처음으로 스위치를 올렸다. 혹시 ‘펑’ 하고 불꽃이 튀면서 폭팔 하지 않을까 하는 염려 속에 스위치를 올린 후 아무 반응이 없이 파워 인디케이터 램프에 불이 계속하여 들어오기에 다시 끄고 얼마 후 그 당시 사용하던 산수이 리시버 앰프의 프리앰프 단자와 파이오니아 스피커를 연결하여 살며시 볼륨을 올려 보았다. 그 때 한쪽 스피커에서 울려 나오던 차이코프스키 바이올린 협주곡 1 악장과 예쁜 아나운서의 목소리를 듣는 감흥은 15년 이상이 지난 지금도 기억에 생생하다. 그 당시 사용하던 산수이 리시버도 최고급의 것이었는데 내 손으로 얼기설기 만든 파워 앰프에서 훨씬 더 풍요롭고 힘찬 그러면서도 감미로운 소리가 난다는 사실을 믿을 수 없을 정도였다. 나중에 찬찬히 보니 다른 쪽 스피커에서도 소리가 나긴 나는데 음량이 훨씬 적었다. 그 후 며칠 동안 회로와 PCB 기판을 테스터로 대보고 하여 잘못을 알아내어 다시 고쳤더니 양쪽 채널에서 비슷한 음량으로 소리가 나왔다. 이렇게 만든 MOSFET 60W 파워앰프에 당시 막 1 달간 다녀온 미국 로스알라모스 국립 원자력 연구소의 로고를 떼어 붙여 'Los Alamos'라고 명명했다.

아마 이 때 자작한 앰프가 제대로 소리가 나지 않았거나 아니면 불꽃을 내며 휴즈가 나갔다던 지하면 아마 거기서 포기하고 값비싼 메이커 앰프의 가격표에 한숨을 내쉬는 그런 신세가 계속 되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자작은 처음 성공이 매우 중요하다. 어느 정도의 어려움을 겪고라도 처음의 자작시도가 성공하기만 하면 그 다음부터는 자신이 생겨 다음 번의 자작도 성공으로 이루어지게 된다.

하여튼 그 때 만든 이 MOSFET 60W 파워 앰프는 아직도 나의 주력 기기로 계속하여 잘 사용하고 있다. 특히 근접 모니터 스피커로서도 최근 더욱 인기를 끌고 있는 영국 BBC 방송국 이동용 모니터 스피커로 개발된 LS 3/5A 스피커와의 매칭이 아주 좋다. 이 스피커에는 지난 12 년간 진공관식이든 트랜지스터식이든 여러 가지 파워 앰프를 물려 보았지만 이 MOSFET 60W 파워앰프와 같이 적당한 온도감과 역동감 그러면서도 정확한 음을 들려주는 조합을 찾지 못했다. 이 LS3/5A 스피커와 진공관식 EL34 푸쉬풀 파워 앰프와 잘 어울린다고 것이 일반적인 평이지만 그 조합 보다 더 나은 소리를 들려준다.

이 파워 앰프 제작에 대해서는 월간 오디오의 92년 10월호와 11월호에 걸쳐 자작기사가 나갔고 필자의 졸저인 ‘쉽게 풀어쓴 스테레오 기기 제작( 지금은 절판되었고 CD-ROM 버전으로만 있음)’에도 나와 있는데 지금까지 대략 1000대 정도가 만들어지지 않았나 생각된다.
그 중 상당수가 대학교 전자과의 졸업 프로젝트로 선정되어 만들어 진 것으로 안다.

졸업 프로젝트로서 적당한 난이도에 프로젝트 완료 후에도 실제 활용 방안이 많기 때문에
적절한 선택이 아닌가 생각된다. 필자의 경우 현재 LS 3/5A 스피커와의 조합에 의한 오디오 시스템으로서의 사용 외에 모노 앰프로서 하나를 더 제작하여 AV 시스템의 15 인치 패시브 서브 앰프 구동을 위한 앰프로서도 사용하고 있을 정도이다.

출력이 60W 라고 는 하지만 여유 있는 전원 부에 의해 구동되는 이 앰프의 파워 감은 AV 앰프에서 표현하는 150W 출력보다도 훨씬 더 파워감이 있다.

현재 이 앰프를 만드는데 사용되는 캔 타입의 2SK135와 2SJ50은 단종이 되어서 구할 수 없으나 대체 품으로서 몰드 타입의 2SK1058과 2SJ162를 쉽게 구할 수 있다. 또한 초단 증폭 듀얼 트랜지스터인 2SC1583과 2SA798도 단종이 되어 각각 2SC1583과 2SA798을 두 개 연결하여 사용하여야 한다는 점을 제외하고는 모든 부품을 쉽게 구할 수 있으며 오디오 클럽( 02-3665-3869)에서 키트 형태로 판매되고도 있다.

첫 번째 자작에 성공한 후 한 동안은 산수이 리시버의 프리 아웃 단자와 MOSFET 파워앰프를 연결하여 몇 개월 만족하며 오디오 생활을 즐겼다. 이후 자작에 관한 책을 찾아보았으나 국내 서적은 007 키트집과 같은 책에 나온 IC를 이용한 장난감수준 정도뿐이 되지 않아 실망하였다. 그 때 청계천 세운상가의 한 기술 서적에서 ‘무선과 실험’이라는 일본 오디오 자작 관련 잡지가 있는 것을 알게 되었다. 마침 지난 호가 몇 권 있기에 뒤져보니 FET와 트랜지스터를 사용한 최고급 프리앰프 제작기사를 보게 되었다. 당시 일본어는 거의 하지 못했지만 회로도와 사진 등이 나와있어 살펴보니 파워앰프 보다 복잡하지만 할 수 있을 것 같아 서둘러 책을 구입하였다.

이 프리앰프는 포노 이콜라이저 회로와 라인 증폭 단 모두 초단에 2K240과 2SJ75라는 듀얼 FET를 상하 좌우 대칭으로 캐스코드 접속 방식으로 사용한 회로, 일명 다이아몬드 회로로 구성한 앰프이다. 포노 이콜라이저단의 RIAA 회로는 NF-CR형을 채택하여 고역의 뻗침이 좋은 것이 특징이다.
이 회로가 마음에 든 것은 증폭 단에는 IC를 일절 사용하지 않고 개별 트랜지스터와 FET로 구성하였다는 것으로 필자는 필요한 수량의 2 배를 구입하여 증폭 율을 일일이 측정하여 매칭 시켜 사용하였다.

자작을 할 때 사용하는 부품은 오디오 잡지에 나온 마크 레빈슨이나 크렐 , 첼로와 같은 하이엔드 앰프의 내부를 눈여겨보아 그 들의 앰프에 사용하는 부품을 가능한 구입하여 사용하였다. 지금은 오디오 자작용 고급 부품을 파는 상점이 몇 군데 생겼고 인터넷을 통한 소량 구입도 가능하지만 80 연대 중반 당시는 전무하다 시피 하여 외국 출장 갈 때마다 전화 번호부를 뒤적여 현지의 전자 부품상을 알아내어 몇 개씩 사오곤 한 기억이 생생하다. 지금은 흔한 독일제 와이마(Wima) 콘덴서도 일본 아끼하바라에서 비싼 값을 주고 샀어도 여행중 계속하여 꺼내보고 흐뭇해하였던 기억이 난다.

어렵게 구한 외제 부품을 가지고 만든 디스크리트 FET 프리앰프는 PCB 기판을 처음부터 신경 써서 만든 탓인지 제작이 이외로 쉽게 끝냈고 별 트러블 없이 정상 동작하였다.
회로를 잘 설계된 회로인데다 고급 부품을 아낌없이 투입한 탓인지 매우 기품 있는 소리를 내주었다. 속으로는 당시 최고급 기기로 평가받던 마크레빈슨 프리앰프와 비교해도 크게 손색이 없으리라 생각이 되었다.

이렇게 FET와 트랜지스터를 개별소자로 사용한 프리, 파워 앰프를 가지고 정말로 많은 음악을 들었다. 주로 라이센스 클래식 음반이었다. AR 턴테이블에 슈어 M97HE 라는 MM형 카드릿지를 주로 사용하였는데 자작에 들인 돈 보다 10 배이상의 음질을 내주는 것 같았다.

무엇 보다 만족스러운 것은 오디오를 시작하고부터 악령처럼 따라다니던 기성제품에 대한 업그레이드 욕망이 사라졌다는 것이다. 또한 전자 엔지니어로서 전자 기술에 있어 가장 기초가 되는 아날로그 앰프 회로에 대한 이해가 커졌다는 기쁨도 있다. 바이어스, 중점 전압 조정, 드리프팅 억제 방법 등을 알게 되면서 철이 바뀔 때마다 이를 최적의 상태에서 동작하도록 조정하여 사용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에 기성 제품에서는 맛 볼 수 없는 만족감도 컸다.

필자가 보기에 현재의 자작 오디오 계가 너무 진공관 쪽으로 치우쳐 있지 않나 생각된다.
물론 필자도 여러 대의 진공관 앰프를 만들어 사용해 보았으나 제작의 용이성, 활용성 , 종합적인 음질 등을 고려해 볼 때 트랜지스터식도 비슷한 비중을 두어야 된다고 생각된다.

출력 트랜스포머 라든지 희귀한 출력관의 음질에 대한 현혹에서 벗어나 중립적이고 음악성 있는 음질은 트랜지스터식 앰프에서 더욱 얻어 질 수 있다. 현재의 하이엔드 제품인 마크레빈슨, 첼로, 크렐 등의 앰프가 모두 트랜지스터식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상기할 필요가 있다.

단지 이들 기성 제품의 내부를 보면 매우 복잡하게 보이는데 실은 많은 부분이 보호 회로와 각종 센서를 포함했기 때문이고 이들을 제외한 순수 증폭 회로는 이외로 간단하다는 점을 들면서 트랜지스터식 앰프, 특히 파워 앰프로부터 자작을 시도해 보라고 권하고 싶다.

나의 오디오 초기 시절 회고

audio 와 Home theater 2004. 10. 14. 1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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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있어 최초의 오디오 시스템이 무엇인가 하고 생각해 볼 때 빼 놓을 수 없는 것이
70년대 초 우리 집에 들어 온 장 전축이다. 6V6 싱글 앰프에 삼미 8 인치 스피커를 양옆에 달고 신일사제 8 인치 턴테이블이 달린 이 전축에는 비록 모노이긴 하였지만 FM 튜너가 붙어있었다. 이제 30년이 가까워지는 세월이 지났기 때문에 잘 기억은 안 나지만 사운드 오브 뮤직 , 펄 시스터즈 그리고 전자 오르간 무드 경음악 등과 같은 이름이 붙은 LP판이 옆에 꼽혀져 있었던 것으로 기억이 된다.

이 전축으로 당시 300원 정도 하였던 팝송 해적판을 청계천 등지에서 많이 구입하여 들었다. 딥 퍼플, 레드 제플린, 산타나 등 지금도 자주 듣는 락 음반들을 너무 시끄럽게 틀어
공부는 안하고 시끄러운 음악 만 듣는다고 온 가족으로부터 눈총을 많이 받았다.

대학교에 진학한 70년도 중반에는 4 채널 방식의 스테레오가 외국에서 많이 유행했었다.
CD-4, QS(Qudraphonic Sound) 등 3 가지 이상의 4 채널 방식이 난립하여 사라져 갔지만
당시 미국의 Audio 지나 Stereo Review 등과 같은 잡지에서 본 일본제 4 채널 리시버의
외관은 뇌리에서 떨쳐 버릴 수가 없었다.

아르바이트를 시작하여 몇 달치 월급을 모아 인켈에서 나온 최초의 4 채널 인터그레이티드
앰프를 샀다. 아마 그때만큼 오디오 기기 구입후의 만족감을 느낀 때는 또 없으리라 생각된다. 일단 앰프만 구입했기 때문에 6V6 앰프 대신 이 것을 삼미 스피커에 연결하고 들어보니 음이 깨끗해졌기는 한데 부드러운 맛이 없어지고 음악성도 많이 없어졌음이 느껴져 이상하게 생각했다. 당시는 진공관 앰프라면 험이 조금은 들리는 구닥다리 물건이라는 고정 관념이 있었기 때문에 왜 진공관 소리가 더 좋은가 이해되지 않았던 것이다.

이후 국산이기는 하지만 좀 제대로 된 벨트 드라이브 턴테이블로 바꾸고 그전의 세라믹 카트리지에서 슈어 M-55 MM형 카드릿지로 바꾸어 LP를 틀어 보니 그 음이 천지차이로 변한다는 것을 느끼고 한동안 감격하여 모든 판을 꺼내서 이 판 저 판 들어본 것들이 생각난다. 다음에 업그레이드 한 것은 일본 파이오니아사제의 CS-55 3 웨이 스피커. 대학 졸업 때까지는 이런 시스템으로 클래식음악을 중심으로한 음악 감상에 열중하였다.

아르바이트로 생기는 월급은 라이선스 판 구입에 거의 써버리고 항상 주머니는 빈 채로 학교에 다녔다. 배고픈 소크라테스가 아마 이런 모습일 것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대학원 진학 후에 논문 프로젝트 관계로 실험 기기를 꾸며야 되어야한 했다. 선배의 도움을 받아 기기를 만들면서 납땜이라든지 전원부 설계 , 어스 라인 잡는 법 등을 실제로 익힐 수 있어 나중에 오디오 기기 자작을 하는 큰 밑거름이 되었다.

직장 취직 후에 청계천 책방에서 구한 일본 자작 책에 나온 60W MOSFET 파워 앰프를 꾸며 봤는데 채널간 음량이 달랐지만 맑고 우렁찬 소리가 나오는 데 반하여 일찍이 자작의 길로 들어서게 되었다.


많은 오디오 애호가들이 비용의 문제 때문에 고민 할 때 자작이라는 방법을 통하여 비용의
문제에 대하여는 어느 정도 달관 할 수 있었지만 공휴일과 퇴근 시간 후의 많은 시간을 회로도와 각종 부품과 함께 보내야만 하는 또 다른 희생을 치러야 했다.

현재는 10 대 이상의 진공관식 앰프와 MOSFET 파워 앰프 등을 자작하여 이 것 저 것 번갈아 가며 들고 있는데 어느 정도 처분하여 생활 공간을 확보해야 할 지경에 이르렀다.